The trace of eternity
“신이 없었다면 나는 인생도 그림도 아주 잘 꾸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고통받는 존재는, 나를 뛰어넘는 위대한 무엇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내게 인생 전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이다. 영원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 전에는 후광을 영원의 상징으로 그렸지만, 이제는 빛과 색채의 떨림으로 영원을 그려낸다. (...) 정신적인 것은 이마 위에 밝은 빛으로 표현을 하고, 희망은 별로 그려 보인다. 인간의 정열은 환한 빛을 뿜으며 지는 해를 통해 표현한다."
빈센트에 관한 두번째 책을 읽었다. 빈센트는 지낸 도시의 시절마다 받은 영향에 따라 다양하고 풍성한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의 노랑색은 희망과 소망의 상징이었고, 그가 그리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가까이에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성서를 늘 옆에 두고 읽으며 자라온 그에게 가장 평범한 사람, 평범한 물건과 풍경은 가장 영원적인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해가 쨍쨍한 갈대밭, 요양원 안에 핀 붓꽃, 카페 안에 앉아있는 이방 여인, 그의 삶 자체가 높지만은 않은 소박한 자리에 늘 머물렀고 매일 오고 가는 이웃들은 그의 그림의 모든 소재가 되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도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일이 아닐까 싶다. 너무 익숙하고, 지루해져버린 대상 속에서도 빈센트는 영원함을, 그 성스러움을 찾았기에 자화상을 그렇게 많이 그린것이 아닐까? 본인의 귀를 잘라내고도 그 모습마저 그는 소박한 특별함을 느꼈을 것이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배신감과 아픔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셀프 컬렉션을 시작하고 지금도 그런 모습으로 날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내 방에는 늘 꽃이 있다. 그리고 빛도 매일 같은 시간에 비춰준다. 내게는 가장 평범한 매일의 것들이 점점 영원을 그려내는 소재가 되고 있음을 본다. 나 자신, 꽃 한 송이, 빛 한 자락, 평범한 것 위의 평범한 것이 겹치고, 그 색채와 떨림이 합쳐지며 나는 영원을 본다.
Pure reflection
I learn from Van Gogh how he used his lines, colors, and subject not to create a well-composed artwork but to express his own world. The original intention of the basic components of drawing became a total different tool as the purpose changed. The classic art was all about the perfect, aesthetic, painting, while Vincent’s purpose was to solely express his emotions, himself, and the eternity he saw in everyday life matters. He used colors that were opposite sides of the color circle to create vibrancy and energy that he had towards art and life; flowers and light that I always have in my photography became the lines and the colors and the subjects to express my world. I believe his works were powerful because he saw some sort of ephemerality, love, life, hope, pain, and power in the most indifferent subject we pass all the time.
Seeing myself through the view finder with an overlap of the ordinary things that surrounds me all the time and using such colors that seemed blunt has started to resemble Vincent’s world. I see my works not as a perfect, beautiful painting, but a pure reflection of my feelings and what I desire in my art. That is dignity, inner beauty, eternity, and life.
The Sower
나의 책상에 늘 앉아 있는 마른 안개꽃을 특별히 보기 위해선, 내 옷장 문 앞 베이지 색 탁자에 매일 내려앉는 석양의 햇살을 특별히 바라보기 위해선, 나라는 평범한 여성을 아주 사랑스럽지만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영원의 흔적을 알아야 한다. 나를 뛰어넘는 위대한 무엇, 자연에 스며들어 있는 생명의 근원, 모든 사람속에 거해있고 인류가 의심하며 물어보는 질문의 해답. 그것을 모른다면, 나는 내가 마주하는 모든것이 그저 우연이고, 잠시 감사할 수 있는 헛된 소망, 운명의 장난,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는 알았다.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의 절정인걸 알았고, 그는 그의 삶 속에 있는 이웃 한 사람, 집 앞의 평원,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속에서도 소재의 가장 깊은 알맹이를 볼 줄 아는 예술가였다.
나는 나의 작업을 반복할 수록, 아티스트로서 더 오랜 날들을 보낼 수록 더더욱 나의 삶으로, 나의 하루로, 나의 순간들, 내 옆의 이웃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여행은 결국 나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라고 하는것처럼, 여태 많은 교육 과정, 창조적 경험, 다문화 영향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내게 주어진 소재는 나의 가장 가까이에, 나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가 생명이 있어 살아가는 동안, 내가 누릴 수 있는 생명의 가장 깊고 넓은 선물은 나 자신,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일하다 쉬어있거나, 씨를 뿌리는 농부들을 많이 그렸다. 그것은 마지 영원의 씨앗을 뿌리는 상징이었을것이라 믿는다. 내 삶의 가장 작은 안개꽃 한 알도, 내 옷장에 오래 있어서 나만의 향기가 나는 원피스 하나도, 결국 영원을 향해 씨앗을 뿌리는 소중한 나의 대상이다.
The most ordinary
When I think about it, then how marvelous I am as a creation- to be the most beautiful thing that God had created to have his eternal life into. The most ordinary, normal, person- myself, now could be seen as a subject that has a trace of eternal life, salvation, and full life. I strive to be an artist who does not seek hierarchy through a God-given talented, but to connect closer to the most ordinary through such talent. And I believe that start was myself, the most mundane, ordinary subject I see every single day, every single moment. And I believe that is the most special, most passionate, amazing subject we always miss. We all need to start from ourselves, don’t we?
King’s Affection
배우 박은빈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서 작년 드라마인 연모를 보고 있다. 박은빈은 세자이면서 사실은 궁녀였던 실제 세자의 쌍둥이인데, 관할의 실수로 남자 쌍둥이, 즉 진짜 세자는 죽고, 그 이후에 몰래 남자인 척을 하며 세자의 역할을 하며 산다. 그녀가 이판대감의 딸의 어린 시녀가 죄없이 숙부에게 죽임을 당하자 불같이 화를 내고 숙부를 그 어린 시녀의 무덤앞에서 무릎까지 꿇게 한다. 그러면서 숙부에게 “그러면 숙부의 목숨보다 그 어린 아이의 목숨이 더 가볍다는것이냐” 라고 숙부의 무개념한 정신상태를 노려보며 말한다. 세자의 도리는 백성의 목숨도 나의 목숨과 똑같이 여기며 보살피는 것이라고, 결코 보잘것없는 생명은 없다고 말한다. 그녀의 분노에는 그녀 본인이 실제 어렸을 때 버려진 아이로, 궁녀로, 천민으로, 백성의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던 것, 본인이 딸이기에 본인을 죽이려고 했던 외조부에 대한 한이 서린 마음이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세자가 되며 나라에서 가장 목숨이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그 많은 권세를 누리게 되었을 때에,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천한 사람들을 위해 칼을 꺼내고 용기를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이 주제는 저번주 주일 설교와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데, 예수님께서 가진 모든 권세를 예수님은 가장 천하고 배고프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쓰셨다는 것이다.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는 권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실 수 있는 권세. 그는 그 권세를 그 자신이 드러나거나 높아지기 위해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가장 막강한 자리에 있는 그는 그 자리를 통해 가장 평범하고, 평범할수도 없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가가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아티스트로서의 소명과도 같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결국 가장 작고, 소박한, 아무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세자가 궁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것 처럼, 나 스스로에게 하늘로부터 어떤 권세가 주어졌는지 볼 수 있을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릴 수 있다.
The worth
Vincent knew his works will eventually be known by a worth more than ‘the art supplies he bought for the artwork.’ He believed in it because he was able to see the eternity in the smallest things he captured. I believe there is such power of eternity in my life that was not given by granted. Even today there is flowers that sit on my white wooden shelf, there is sunlight that turns sky blue as it hits the green curtains of my windows. They all are the most ordinary pieces of life that becomes a true artwork of me. Most of all, it is myself, that was created for a purpose of becoming the most special, extraordinary subject in the most ordinary way to embrace eter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