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en, Germany

Munchen

뮌헨은 깨끗했다. 역 밖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도시가 복잡해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속도로 알맞게 움직이는듯 했다. 다비데가 머무는 숙소도 깔끔했다. 나의 마음이 가장 유리와 같을때, 나를 판단없이 알아주는 누군가의 보금자리 아주 가까이 있는것 자체로 나는 마음에 평안함을 느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B는 상기되어 보였지만, 또 에너지가 넘치는듯 하기도 했다. 잔디가 푸른 테라스에 앉아서 식기 시작한 파스타를 먹는 B를 보았다. 뮌헨에서의 첫 날의 밤 공기 속에서 B는 누가 먼저 말할것도 없이 마음을 열어 본인의 고립감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게 질문했다. 아직 기차 속에서의 감정적 무너짐이 가시지 않은 나는 생각보다 벽을 두고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나의 유리같은, 헛헛한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할까, 너무 울어 건조한 두 눈을 끔뻑이며 B를 보았다. 단 하나의 질문이었고 잠시의 대화였지만 나는 알았다. 나와 참 비슷한 사람이었구나, B도 그렇구나. 오랜 시간을 알았지만 통화도 자주 해본적도 없고 서로의 깊은 얘기를 해본적이 없는 우리에겐 그 순간이 귀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에 나는 나 있는 그대로 있을수 있었던것 같다. 고민하지 않아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마음 깊이 고마웠다. 

English Gardens

We took the metro and such memory was brought up as years ago I visited him at Rome as we were in the metro traveling around Rome. It felt like being back at Rome. It seemed like nothing has changed since then, but it had. But it was okay, because we decided to spend the time at this new city. Together. For his, and my fresh start. We layed on the grass fields at the English Garden, and I remember seeing the sky as I looked up. The sky and the Victorian building created such stable, but free landscape in my eyes. Bwore a blue polo and his blue and the bright green of the field seemed eternally pure. I would talk and stop, and sit randomly on benches even before we arrived at the next destinations, but he followed and sat by me without complaints. And listened carefully. He looked at me everytime I would pause and look away, as if he wanted to catch my silence, or read my unspoken emotions. He has such talent, I guess it's a talent, of listening, that he possibly did not lose a single word I said. He seemed so delicate when it comes to his listening. And that was all I needed, to go through the fragile times where the chamber of secrets, room of scars opened up. Delicate listening for a delicate heart that was shattered. I was slowly being known. 

The Flag

고기와 치즈가 든 토틀리니를 함께 요리해 먹었다. B가 한 음식은 담백하고 재료 고유의 맛이 나는 정통의 맛이었다. B와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는, 소박하지만 담백한 사람. 벽만한 창문 두개를 활짝 열어놓았는데 천둥과 비와 해일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밤이었다. 몇년동안 충분히 아파하지 못했던 상처가 아파했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의 상처에 대해 물어보는 B에게 다시 비밀의 방을 열었다. 두번째는 첫번째보다는 덜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Being myself heard was enough. And his food was warm enough to let me know that I will be okay. 지치게 감정을 쏟았는데도 푹 잠들지 못하고 꿈을 꿨다. 낯선곳이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자꾸 기억이 안나는 꿈들이 많이 왔다갔다 했다. 오랜 상처가 진정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 했다. 


Eataly

창문이 많은 엄청나게 큰 식재료 가게이자 식당에서 B는 일하고 있었다. 빵을 사가는 쪽에서 사람들이 금새 지나칠 법한 유리 방 속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굽고, 끝이 없는 새하얀 밀가루를 치우고 털어내고 있었다. 유럽에 와서 간 식당마다 바게트 빵을 식사 전에 늘 주었는데, 그만큼 빵이 식사의 기본인 나라에서 빵을 하루종일 만드는 그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마지막날 직접 그 유리방에 들어가서 화덕을 보았는데, 잊혀지지가 않았다. 베이지색 벽돌로 이루어진 화덕은 엄청난 열기를 품고, 내뿜고 있었다. 그 열기 속에서 빵을 만드는 B는 참 뜨거운 사람이구나, 느꼈다. 그 열정과 열기는 결국 빵을 부풀게 하고, 누군가의 식탁에서의 일용할 양식, 즉 생명이 되는것이 감동적이게 느껴졌다.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하나도 모르는 내게 참 신선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방문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화덕 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암흑, 그 깊이, 그 깜깜한 공간- 그러나 얼굴을 감싸던 그 열기, 그것이 모든것이었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너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은 차갑게 몰라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의 열기는 생명을 만들고, 또 사람 살리는 열매를 만들것임을 확신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B 가게 코 앞 독일 식당에서 나름 전통 독일 음식을 먹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야외에서 B가 좋아하는 마호가니 갈색 가구에 앉았다. 자리가 없어서 등받이가 없는 의자였지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나는 또 끊임없이 아침의 일화에 대해서 풀어냈다. 눈물이 나올때 가끔 나 스스로도 낯선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나는 마지막 날이어서 벼르고 온건 아니었는데 마치 그런듯 계속 울었다. 노란색 냅킨을 눈에 묻고, 오리 고기를 먹고, 치즈랑 빵을 먹다가 또 울고, 맥주를 마시다 또 울컥하고, 그랬다. 맥주 때문일까, 내 쉼없는 눈물 때문일까, 어느새 B의 눈도 벌게져있었다. 그 벌건 두 눈이 나를 놀랍도록 깊게 위로했다. 나의 감정을 어렵게 언어로 풀 때마다 그는 눈을 감고 들었다. 마치 음식을 음미하는것 처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듣는듯 했다. 감정이 언어로 내 입을 나올때마다 무언가를 토해내는 느낌이었고 내 목소리는 서글프게 떨렸다. 계속 벌컥벌컥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는건 쉽지 않았지만, 내 아픔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점점 더 뚜렷해지는듯 했다. 그가 내게 적어준 편지에 나의 아픔을 abandonment라는 단어로 표현을 했다. 정확하고 정확한 만큼 나의 상처받은, 고립된 상태였다. 그 상태를 이제야라도 말할수 있어서, 말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나는 감사했다. 

The last night view at the Olympic tower was magnificent. So short that it felt dreamy. We listened to original sound track from the movie Between Passion and Indifference. The cello sound embraced the Sunday night of Munich, and the view was fairly quiet but vast. It was beautiful. The view seemed moist from the rain the other day. I could say it was the finale to really touch my heart that was hurt; the cold air of the night came into my lungs and I breathed in with full heart. For new air. The lights of the view sparkled dimly, but hopefully. 

유럽 여행의 마지막 주는 사실 유럽으로 떠나는 당일 바뀌게 된 기적이었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일주일,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시기로 작정하셨던것 같다. 마음이 더뎌서 아픈것도 느릿한 나를 위해, 그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위로와 쉼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은 내게 선물과 같다. 여행보다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과 같았다. 올림픽 공원을 걸으면서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었는데, 그래, 그런 일주일이었다. 몸과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시작점. 참 힘겹게 다시 돌아온것 같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몸보다 나의 마음이 더욱. 그래도 괜찮다. 결국 회복은 그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뮌헨에서 큐티를 할 때 내게 '힘' 이라는 묵상을 통해 날개를 달아주셨다. 크고 풍성한, 깃털이 많은 하얀 날개였다. 그 날개는 서서히 퍼지며 내게 무언의 상징을 알려주었다. 하늘을 높이 나는것보다 더, 강렬하고, 뜨거운, 무언가였다. 주님의 품에서 마음껏 아파한 자, 슬픔을 대면한 자, 아픔을 드러낼 줄 용기를 거머쥔 자에게만 주는 생명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